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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은 진도항을 지키고​
사람들은 세월호를 기억했다

오랜 시간 바닷바람을 맞은 기억관 컨테이너들은 10주기를 맞아 노란 페인트 칠이 덧입혀졌다. 진도항을 상징하는 빨간 등대도, 노란 리본 조형물도 새단장을 한 모습이었다.

 

색은 덧입혀졌어도 지난 10년의 세월은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분향소 문을 열면 10년간 자리를 지켜온 희생자들의 사진이 빼곡히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향을 피우지 않아도 방 안 가득 진하게 배어 있는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잊지않겠다'고 적어놓은 추모객들의 방명록 속엔 저마다의 기억도 기록됐다. '2014년 4월, 8살 큰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TV를 틀었을 때 마주한, 하루종일 가슴 졸이며 탄식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그 아이가 단원고 2학년생들과 같은 나이가 됐다. 오늘 그 친구를 데리고 왔다. 나의 아이가 자랄수록 잃어버린 그 아이들이 너무 사무친다'는 손글씨도 10년의 증거다.

오랜 시간 바닷바람을 맞은 기억관 컨테이너들은 10주기를 맞아 노란 페인트 칠이 덧입혀졌다. 진도항을 상징하는 빨간 등대도, 노란 리본 조형물도 새단장을 한 모습이었다.

 

색은 덧입혀졌어도 지난 10년의 세월은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분향소 문을 열면 10년간 자리를 지켜온 희생자들의 사진이 빼곡히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향을 피우지 않아도 방 안 가득 진하게 배어 있는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잊지않겠다'고 적어놓은 추모객들의 방명록 속엔 저마다의 기억도 기록됐다. '2014년 4월, 8살 큰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TV를 틀었을 때 마주한, 하루종일 가슴 졸이며 탄식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그 아이가 단원고 2학년생들과 같은 나이가 됐다.

그로부터
10년 후

추모의 도시가 된 안산

상가에선 음악도 틀지 못했다. 

안산시에서 자중해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죽었는데 노래가 나오냐"는 시선이 두려웠다. ​​

상가에선 음악도 틀지 못했다. 안산시에서 자중해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죽었는데 노래가 나오냐"는 시선이 두려웠다. ​​

세월호참사 10주기…안산시내 전경 (6).jpeg

​추모와 기억의 강을 건너는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이후 화랑유원지도 변했다. 안산 아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화랑유원지를 변하게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의 모든 눈은 안산으로 쏠렸고 그 중에서도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는 안산 화랑유원지에 집중됐다.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안산으로 조문객이 몰렸다. 올림픽기념관에 설치된 임시 합동분향소는 인파를 감당하기 역부족이었다.

고심 끝에 정부는 같은 달 29일 규모가 큰 화랑유원지 제2주차장에 공식 합동분향소를 열었다. 전 국민에게 화랑유원지가 대표적인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으로 인식된 건 이때부터다.

열 번의 해가 지난 시간
방치되고 폐쇄된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됐다. 3년이 지나고 세월호는 겨우 뭍으로 건져올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목포신항에 있다. 

지난 8일 저녁 9시께, 목포신항에서 장희윤(26)씨를 만났다. 희윤씨는 봄이 되면 목포신항을 꼭 찾는다고 했다. 7년째 목포신항에 있는 세월호를 보기 위해서다. 이날 저녁에도 희윤씨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세월호 거치현장을 찾았다. 노란 리본이 둘러진 펜스 틈새로 세월호를 바라보았다.

열 번의 해가 지난 시간
방치되고 폐쇄된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됐다. 3년이 지나고 세월호는 겨우 뭍으로 건져올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목포신항에 있다.

지난 8일 저녁 9시께, 목포신항에서 장희윤(26)씨를 만났다. 희윤씨는 봄이 되면 목포신항을 꼭 찾는다고 했다. 7년째 목포신항에 있는 세월호를 보기 위해서다. 이날 저녁에도 희윤씨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세월호 거치현장을 찾았다. 노란 리본이 둘러진 펜스 틈새로 세월호를 바라보았다.

"지역 모든 행사에 세월호 얘기가 나왔다"

"오래된 동네처럼 금 간 건물만 찍어 갔다"

"4월엔 밝은 옷도 입지 못했다"

글 | 정운·공지영·고건·김동한·백효은·목은수·이영선·이영지·정선아

편집 | 김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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